여정(旅程) the tediumof a journey

김건우 사진전(양준호 미술사박사)

작가 김건우 2017. 5. 21. 15:47

김건우사진전

 


서사구조의 주체

김건우의 작업은 서사적 구조를 가졌다. 서사구조에서 작가가 응시한 주요 대상은 강조가 된다. 이는 작가가 응시한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응시점은 응시하고 있는 위치를 알려주는 선언이거나 고백이기도 하다. 단 응시하는 자신이 화면에서는 숨겨져 보이지는 않는다. 응시하는 존재로서 자신의 의미와 위치를 드러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진은 작가가 이것을 어디에 서서 무엇을 보았다는 확인 작업이기도 하다. 물론 카메라가 가진 메커니즘과 디지털 방식의 이해가 미적인 감도를 결정할 것이다. 작가는 목적 대상 주변의 풍경을 보고 느끼며 체험한 모습을 작품으로 옮겨낸다. 자신의 위치나 감성을 드러내는 서사의 주체가 있다.

작가는 기존 방식과 차이 나게 관조한 관찰을 실재 풍경과 심상 풍경의 경계 사이에서 표현한다. 사진은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지난 시간의 흔적이거나 계산된 시선의 상황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극적인 스토리를 담거나 이야깃거리를 담겨 있었을 법한 상황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일상을 특별한 구성보다는 상황을 설명하려는 사진들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대상에 집중하고 감정을 이입하여 내면적 감정을 표현한다. 정서적 반응을 극대화하려고 사진 매체인 인화된 화면에 특정 대상과 공간감을 되도록 섬세하게 표현한다. 대상과 작가의 거리 설정은 본래의 형상을 넘어 작가의 심상을 미묘한 가치가 있게 서사성을 표현한다.

 

서사 구조를 해석하다.

김건우의 사진은 상황을 설명해주는 문법의 의미를 분석적으로 한다. 분석적인 감성으로 접근하지만, 분석을 넘어 심상으로 나아가 표현한다. 그의 작업은 과거형이라기보다는 기억의 새로움을 그려낸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회화적이라는 느낌이 먼저 든다. 회화성이란 특정 분위기를 만들어 예술성을 높이고 독자적인 사진만가진 의미를 찾아 사진의 고유성을 획득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희랍에서는 서사구조를 구분하는데 미메시스(모방, mimesis)와 디에게시스(서술, diegesis)로 나누어 생각했다. 미메시스는 실질적인 것처럼 상황을 직접적으로 자신이 연기하여 설명하거나 그것의 대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디에게시스는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일을 하였다. 작가의 작업은 한 화면에 미메시스와 디에게시스의 역할을 구분하는 일을 동시에 나타내서 사진 앵글이 있었던 상황을 묶어 두려고 한다.

대상으로 삼은 풍경의 실재와 작가가 느끼는 감성적 모습은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떤 대상을 어떤 자리에서 어떤 목적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작업의 감도는 많은 차이가 난다. 또한 대상이 재현될 당시의 모습이 현재와 얼마나 닮아 있냐는 문제도 함께 한다. 그 대상은 현재의 사실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셔터의 속도 차이만큼 의미를 가진 시간이 양()이나 질로서 차이가 날 경우도 있다. 그래서 김건우의 사진은 셔터 속도 만큼은 실재적 의미를 가진다. 그 실재적 의미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대상화하는데 현실 속에 있다가 화면 속으로 새롭게 들여오는 순간 미메시스적인 모습을 바뀌게 된다. 그러나 화상에서 화면으로 옮겨지는 순간 객관적인 그것이라고 모두가 말하는 디에게시스적 의미였던 것을 화면에 고정한다. 미메시스적 의미가 객관성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이 순간 작가의 감성은 대상을 실재로 돌이키게 하는 의미를 엿볼 수가 있다.


허구가 기록을 살린다.

기록되었던 것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은 엄연히 다를 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다. 기록된 풍경은 시간성과 장소의 모습이 숨겨지게 되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을 쉽게 드러내 보여주지는 않는다. 사진은 특정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으므로 의미는 부단히 분석되고 해석된다. 그래서 더 실재에 가깝게 작가의 작업은 의미 있게 다가선다.

미메시스처럼 대신 연기하는 극적인 표현인 모습과 기록적인 모습의 전혀 다른 정위에서 서로의 접점을 찾는다. 작가가 고민한 흔적은 감각적으로 표현하여 미메시스적 표현의 방식을 단색화에 실재성으로 묶고, 실재 대상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대상만이 아니고 주변의 공간도 작가의 호흡으로 겹쳐서 표현한다. 한 장의 사진이지만 마치 한 화면을 전혀 다른 두 장의 사진을 겹쳐 놓은 듯하다. 가상 속의 연속 화면과 같은 작업은 자각의 직접성과 간접성의 통일을 꾀하는 허구이다. 사실을 닮거나, 비슷하게 같은 것이 아니라 사실이었다는 기록으로서의 허구를 알린다. 그 사실을 닮은 의미까지도 리얼리티를 획득하게 하려는 순간에도 작가의 숨을 멈춘호흡이 있다.


잠시 숨을 멈추어야 한다.

작가는 숨을 멈춘호흡이 가까운 역사를 바로 보는 현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고 보아야 하는지 작가는 제시한다. 너무 함부로 다가서는 직접적인 면도 아니고 멈춰진 어떤 순간의 다큐멘트 같은 성격도 있다. 멀지 않은 역사의 대상으로 멈추어서 예술성을 띠게 하는 것, 사진의 초기 기술을 유지하며 원본성에 충실하려는 작가만의 의미로 해석된다.

김건우의 작업은 무엇을 선택해서 그것을 숨 쉬지 않는 순간의 대표성을 뽑아낸다. 그것이 포착하는 일이고 작가의 입장을 산출하는 일이기도 하다. 많은 사진이 선택하는 권리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그 권력은 사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사진을 대하는 작가의 자세에서 나온다. 작가의 자세를 통한 미적인 권리를 누구나가 누리는 것이 아니다. 권리는 어쩌면 숨을 멈추고 잠시 기다리면서 꿈꾸는 환상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환상이 우리의 삶에 희망을 주고 기억을 하게 하는 장치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잠시 숨을 멈추고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양준호 (미술사박사)